캄보디아 평신도 선교사 파송 간증문 (강현옥)
먼저, 하나님께 이 영광스러운 일에 저희를 불러주심에 더 할 수 없는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선교에 대한 첫마음을 심어주신 것은 2012년 바누아트 단기 선교입니다.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단기팀에 기쁜 마음으로 협력 하기로 하고 항공권과 medical material 을 준비하고 고대하였으나 임신으로 인하여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2017년 하와이에 있는 YAWM 본부에 Medical Ship 에서 6개월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기도 하였으나 하나님께로부터 응답 받지 못하였습니다. (훈련 목적이 아니라 하와이 놀러 가고자 했던 의도를 하나님께서 눈치 채셨던 것 같습니다)
다시 선교의 마음을 불을 붙이는 계기가 지난 2018년 2월경 한국에는 구정설 명절 무렵에 있었습니다
남편의 지인선생님께서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을 의료 선교로 섬기신 지가 7년째이시고 올해에도 의료 단기 선교를 가시며 시드니에 자리를 비우시는 클리닉을 부탁하셨습니다.
다녀오신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간증은 저희의 부르심을 확신할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간략한 증거 제시)
감사한 것은 남편과 제가 함께 그 마음을 받았습니다. 이번엔 부르심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모든 길이 캄보디아 표지판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같은 주, 낯선 번호의 전화를 한 통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교 은사님께서 시드니에 살고 있는 자제를 만나기 위해 방문 하셨는데
제게 전화를 할 의도는 없었으나 부군 되시는 분께서 실수로 제 전화 번호를 누르셨다고 합니다. 이 또한 은혜로 받아들이고 반가운 만남을 가졌고
교수님께서 갑자기 캄보디아를 언급 하시면서 간호 대학에 선교사로 권유 하셨습니다. 열흘 동안 다른 방식으로 세 번 이나 캄보디아를 보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오랫동안의 기도가 응답 되는 시간이었고 오랜 시간의 기도가 필요했던 이유는
이것이 나의 비전인지 하나님의 비전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나의 업적이 빛나게 것인지 하나님이 기쁘시고 영광 받으실 일인지를
하나님 앞에 명확하게 분별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 고백했었습니다.
하나님, 주의 일이라고 내세워 나의 성취감과 만족, 예수님 이름으로 복음 장사를 하러 가고 싶어 하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따뜻하신 성령님은,
“기특한 내 딸, 아니야 내가 원했어. 그 마음 내가 준거야”라고 마치 제 어깨에 얹혀진 성령님의 두드리는 손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해서 좀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세상의 말을 하나님께 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참 착하시네요 … 나의 죄를 아시면서도 모른 척 하시기.. 그리고 하나님 너무 불쌍하세요 저 같은 사람도 쓰시고자 하시고요 “
그때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땅에서 보화를 발견한 농부의 심정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기쁨은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기까지 기다려주시고 그분의 방법으로 이루시는 일들을 선교지 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부르신 하나님이시니 함께 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저는 윤목사님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배우면서 나의 우상은 나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삶, 성취 하는 삶, 하나님께서 나에게 향하신 계획, 이러한 것들이 별로 문제 없이 들리지만 모든 초점이 나에게 맞추어져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무리 보여달라고 졸라도 안보여 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나의 삶을 어찌 쓰실까.. 설레어 하니까 바로 응답 주셨습니다.
이번 가정교회 컨퍼런스차 오셨던 이원준 유해숙 선교사님, 완전한 회복은 안되었기 때문에 두 분을 위한 계속적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이 두 분과 지내면서 느낀 가장 큰 점은 역시 선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교 역사에 물론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많지만 대부분은 연약하고 희미하고 초라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기여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자 목녀 분들입니다.
저도 왕년에 vip 였습니다.우리 한송이 목녀의 간증 레파토리 40년 카톨릭 언니 접니다.
우리 송이가 저 때문에 했을 마음 고생이 목장에서 선교사 파송하는 것으로 덮어질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정 교회를 처음 만났을 때의 저의 느낌은 새로운 전도방식을 택하신 영민하신 목사님은 손 안대고 코 푸는 방식을 택하셨구나 (죄송해요 목사님 ㅋㅋㅋㅋ)
왜 이렇게 까지 신앙생활 해야 하는 건지,
이것이 사역인지 삶인지 가쉽 인지 구분 할 수 없는 일들이 제게는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더 솔직해진다면 가정교회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조금 성가신 방법이니까 뭔가 산뜻한 것이 없을까 생각해 본적이 많았고
우리 송이 목녀님에게 그렇게 얘기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난 가정교회가 정말 싫은데 딱히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
이번 유해숙 선교사님과 지내면서 지나가는 말로 하셨던 것 같은데
“어린이 사역, 공동체 사역 ,부시 맨 사역, 학교 사역, 병원 사역……내 사역 또 누군가의 사역.. 가정 교회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많은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요…
학교도 병원도 그 선교사 떠나고 나면 폐허가 되거나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요.”
제자 안 만들어 놓으면 한 영혼 주님 영접하게 하지 않고 교회 짓고 건물 짓는 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900년 호주에서 파송된 맥켄지 선교사님은 식인종이였던 바누아투 부족을 10년동안 섬기다가 풍토병으로 철수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1910년 바누아투 교회 성도들이 모아준 200파운드의 선교 헌금을 가지고 조선의 나환자 촌으로 가게 됩니다
식인종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 되어 조선이라는 땅에 그들도 우리처럼 복음을 듣게 하라는 기도를 받고….
나환자촌에 부임하신 전도사님은 우리가 잘아는 손양원목사님이셖고, 일신 기독 병원의 전신이 됩니다. 현재까지 부산의 유명한 일신 기독 병원은 22만명의 신생아를 받았고 2600 명의 조산사를 맥켄지 선교사님의 두딸 선교사님이 키워냅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이 어떠한 우연으로 혹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미전도 종족이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화과 나무로 살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한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짐이라고 믿습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을 전체적으로 한번 쭉 읽어본다면 어떠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어떠한 하나의 틀에서 유기적 관계로 역사적으로 이루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체를 배우다 보면 처음에는 소화기관 따로 심장, 신경, 다 따로 배우지만 결국엔 하나의 인체를 완성하기 위해 유기적인 관계로 얽혀 있는 것을 알게 되며 인체의 신비에 놀라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신 계획이 있으셨음을 지난 시간들을 통하여 깨닫습니다.
그 무엇 하나 그냥 이루어진 것 없이 계획 안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선교지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축복을 허락 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중보자 되어주실 수정 교회 성도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의 기억들 …. )
그곳에 가서도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한영혼만을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만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