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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란목녀 간증

가정란목녀 간증

 

지난 화요일 집사님 간증을 준비해 주십시오 라는 목사님의 짧고 간결한 한통의 메세지는 정말이지 저를 맨붕 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전 생명의삶 수료후 모두의 간증시간이 있을때에도 유독 넘치는 울렁증으로 예배를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던 저이기에 평안을 구했지만 자고나면 또다시 찾아오는 염려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이말씀으로 위로받으며 이렇게 순종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풍경소리가 고운 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연꽃등을 손수 만들어달고 유학생활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반야심경을 가끔씩 외우고 많은 신들중에 하나님이 제일 큰신이라 믿고있는 그런수준의 남편과 32년이 넘도록 단한번도 교회를 가본적없는 저는 98년 결혼과 동시에 호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가다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확정적인 단명운의 사주를 점지받고 온터이라 교회 다니시는 분들을 각별히 조심했고 4대 독자가 될뻔한 첫아이의 이름도 시아버지께서 종하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결혼전에 다니던 점쟁이에게 전화를 걸어 기어이 고집데로 재우라고 이름을 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날때쯤 지금의 송목사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개척을 준비중이셨고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중 목사님께서는 저희 부부를 부르시더니 다음주부터 파라마타 퍼블릭 스쿨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같이 드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콩깍지의 영을 부으셨는지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을했고 14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출석하는 첫 주부터 재정을 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재정을 맡기신 목사님의 믿음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뿐입니다. 아이5섯명 포함 출석15명 정도의 성도가 모였었고 매주 200250불 정도의 헌금이 나올때였습니다. 동생네는 친인척 비리 의혹을 살수도 있으니 안된다 하시고 한가정은 너무 젊어서 안된다 하시고 청년은 청년이라 안된다 하시고 딱 우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도 같은영이 임했는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고 14년을 또 그렇게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교회 출석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무늬만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그렇게 믿음인듯 믿음아닌 믿음같은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나의 열심으로 교회를 다니던 200210... 457 비자를 진행중이던 저희는 이민법률사무소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불법체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트라스필드의 한 이민사무소에서 이곳에서 태어난 3살짜리

재우마저도 불법체류자가 되었단 사실에 내려오는 2층계단에서 목놓아 얼마나 펑펑울었는지......

한국으로 돌아갈수도 여기에 남아 있을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곳에 남기로 결정을했고 남들은 모르는 알아서는 안되는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재우가 5섯살이되어 학교를 가야할때 비자상태를 요하는 질문란에 목사님께서는 우린 어차피 천국시민권을 가졌으니 시민권자라고 합시다 라며 용기를 주셨고 그렇게 말씀하실때 목사님께서 얼마나 큰 믿음을 필요로 했을지 저희는 그때는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재우는 학교에 다닐수 있었지만 불안감을 떨칠수는 없었습니다. 불자들의 단속이 심할때였고 남편은 그당시 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민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쳐 불자들이 대거검거되고 붙잡히는 현장이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이 일어났을때 남편은 그날따라 사무실과 현장순서를 바꾸게 되는 바람에 살아남은 적도있었습니다. 믿음은 없었지만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파이브덕 초등학교에서 한인아이가 학교에서 잡혀가는 사건으로 비판의 소리는 높아졌고 불자로 적발된 가족들 이라도 아빠만 잡아가는 이민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염려가 한시름 놓이고 이런 삶에도 여유가 생기는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사이 교회는 새로운 가정들과 한국에서 워킹으로온 청년들로 성도의 수가 늘어나 수정교회1호 목장의 목자이셨던 송목사님께서는 분가를 권면하셨고

또 같은영이 임하사 갈길을 알지못한채 저희는 가들리목장의 목자목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교회를 다닌게 있으니 목자와 양의비유 예수님은 선한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어린양

말씀과 찬양은 알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맡겨진 영혼 이라는것은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혹여 식사기도라도 시킬까 부엌에서 시간을끌며 안전하다고 생각될때 자연스럽게 앉기. 뭔가 시킬것 같은 수상한 기운이 흐르면 잘자고 잘노는 아이 괜히 보러가기. 이시간만 잘버티자 표나지않게....등등. 나의 부끄러움을 다 적을수 없을정도입니다.

영적무지의 지존으로 목녀의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길이길이 참아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입니다.

그당시 남편이 자유롭게 일할수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늘 생활비로 렌트비로 쪼달려야했고 늘 배고픈 청년들에게 매주 밥을 해 먹이는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후일 들어보니 음식을 어찌나 맛있게 잘차려 주시는지 잘사시는줄 알았다며 우리 가정을 부러워 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청년의 어머니로 부터 우리 아이에게 엄마처럼 따뜻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시며 편지와 선물을 보내셨을땐 어찌나 미안하던지요.한국으로 돌아간 목장의청년들이 지금도 우리를 그리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흐뭇함보다 한없이 부끄러워 지는것은 아마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주일아침 교회로 가는 차안에서 십일조로 크게 말다툼을 해서 이혼할뻔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린이 전도를 위해 인형극을 준비해 보자고 하셔서 성도들이 모여 인형을 만들고없는 살림에 남편이 인형극틀을 만들기로 해서 필요한 것들을 사서 또 본인이 직접 장인정신으로 재봉틀을 박고 쇠봉을 자르고 붙혀 보기에 그럴듯한 꽤큰 사이즈의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구입비가 1000불정도 들어갔는데 저는 그 비용은 우리의 섬김이니 십일조완 별도다 라고 했고 남편은 나도 알지만 생활비와 렌트비는 어쩔거냐며 안내는 것이 아니라 못내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빌려서 내는 돈은 원하지 않는다며 도토리 키재기 같은 믿음으로 서로를 공격하였습니다. 십일조 이야기하다 교회다와서 이혼이라니.....왠열.

그래도 하나님께서 없는중에 섬기고 믿음없음에 안타까워 울줄도 아니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고 순하디 순한 양들로만 엄선해서 목장으로 보내주셨습니다. 미덥지 않은 우리의 많은 부분들을 아시면서도 초원지기의 사명도 감당케 하셨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재우는 10살이 되어 시민권을 받게되었고 장관탄원으로 저희는 영주권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신청한지 3년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응답이없자 저희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사그러 질때 초원지기 모임에서 저는 그동안 마음에 묻어 왔던 비자에 대한 저의 감정을 나누었고 목사님과 초원지기들은 우리가정을 위해 뜨겁게 중보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 뒷날 이민성으로 부터 영주권이 나왔는데 왜 오지 않느냐며 전화가 온것이었습니다. 기뻤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기뻤습니다 차를세우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민성으로 가는길에 창밖의 풍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과 시드니의 빌딩들위로 내리쬐는 5월의 가을햇살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모든것이 감사했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호주에 온지 14년만에 영주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3년 교회적인 분위기도 신약교회의 회복을 꿈꾸며 새로운 일에대한 기대와 설램으로 활기차게 움직일때였고 삶공부가 진행되어 간증자가 삶을 나누며 도전의 시간을 주고 있던때라 우리부부도 새해 새목원과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일로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가들리 목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2년동안 분가는 커녕 VIP 한명 없었습니다. 한자매의 남편은 교회를 떠나기까지 했습니다. 목원1명과 모임을 가질때도 있었고 아무도 참석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저는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우리가 왜 목장을 해서 이렇게 쌩고생일까.....

그 당시 저희는 홈크리닝을 같이하고 있었고 남편은 새벽2시에 슈퍼청소를 또 가야했기 때문에 육신은 늘 피곤하였고 드라마볼 시간은 있어도 영혼을 돌보고 가꿀 시간은 없었습니다. 저희는 목장 사역을 내려놓기로 결정하고 목사님과 초원지기의 결정하에 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해방이다라는 생각에 편하고 좋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기다리는 자가 있었고 사단은 우는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다저를 찾은것 같았습니다

목장을 쉬는동안 말씀과 기도로 삶의 무너진곳들을 쌓아야지 라고 했던 생각은 이내 곧 넌 실패자야 너 지금 목녀생활11년차야 어디가서 11년 됐다고 말도 하지마 남들이 웃겠다

교회 떠난 그형제 그인간 남의 눈에 티만보고 지눈에 들보는 못본다고 그렇게 궁시렁대더니...너를 한번 곰곰히 생각해봐

기도하지 않는데 기도하지 않는데 목원의 아픔을 니가 어떻게 알아 아는척좀 그만하시지, 꼭 가정교회에서만 영혼구원이 일어나나 교회를 옮기는건 어때‘.

사단은 날마다 영혼 저 밑바닥에 묻어버린 나의 수치심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11학년이된 아들에게 과외하나 시킬수없는 형편은 나를 더 참담하게 했습니다. 며칠후 작은아이와 함께 차를타고 가던중 갑자기 차가 반바퀴를 그냥 돌더니 노라이턴 이라고 적힌 교통표지판을 들이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남편과는 다 저인간 잘못만나 이고생을 한다싶어 6주째 말도 안하고 지내던때 였었는데 그날저녁 ooo목사님의 설교를 듣던중 윤복희권사님의 여러분이라는 노래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고 말씀을 들은후 인터넷을 통해 고통중에 있을때 성령께서 들려주신 음성을 적은것이라는 사연도 듣게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노래는 가요제를 위해 개사한 것이고 성령께서 주신 원래의 말씀은 이렇다 했습니다

When you walk through the cloudy days

앞이 안보이고 캄캄하니

He said. I‘ ll be the one to be your cane

그가 말했지 내가 너의 지팡이니까 나만잡고 따라와

When you need someone to share your love

네가 사랑이 필요할때

He said i‘ll be the one to be your love

그가 말했지 내가 바로 너의 사랑이 되어줄께

So smile and look at me And i will tell you what

그러니까 웃고 나를봐 내가 말해줄게 있어

Every everybody's passing through this way

누구나 누구나 다 이길을 걸어가

So have faith and be tall you can‘t stop now

그러니까 나를믿고 어깨를펴 여기서 너는 멈출수없어

Now is the start .This is the way. An only way

지금이 시작이고 이길이야 이길 오직 하나뿐이야.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것 같았습니다. This is the way, An only way. 그러니 내딸아 다른길로 가면 안된다고....“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나의길을 그렇게 함께 걷자고...

      

하나님은 제일 먼저 예배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신다고 생각하니 황송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겠고 찬양땐 그저 눈물만 났습니다 십자가의 그사랑과 용서에 목이 메였습니다. 예수님의 살과피를 나누는 성찬때는 그 구원의 은혜가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우간다 목장의 목자목녀님께서는 교회의 리더가 쉬는꼴은 못보신다며 우간다목원들과는 토요일에..... 저희 가정과는 금요일로 2번이나 목장모임을 해야하는데도 수고를 마다않고 저희를 섬겨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큰아이의 학원비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셨습니다.

작년53개월의 쉼을갖고 새로운 목원들과 목장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순한양도 보내주시고 고집이있는 양도 보내주셨지만 3마리의 외로운양도 함께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더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목원들을 사랑의 눈으로 볼수있는 착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올리브블레싱때 아이들은 돌아가며 서툴지만 말씀을 암송하고 말도 안되는 것들에 대해 감사를 나누며 5섯살 여동생이 하이스쿨오빠의 편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11년차 목녀이지만 정신차리고 행복한 목녀가 된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이제야 기도하는 목녀가 되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저를보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을 부르시지 않는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니 우리가 특별해졌습니다.

그 부르심에 반응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네게 광야길을 걷게 하신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사랑하사 네마음이 어떠한지 그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이 신명기의 말씀은 제 삶의 실제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목사님내외분과 차를 마시던중 그때 그랬었지요라고 광야의 시간들을 이야기할때 우리 목사님 저 온화하신 얼굴로 ‘40년 안걸린걸 다행으로 아세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계신 목자목녀님들 저보다 더 귀한 삶의 간증들이 있을 것이고 모두다 주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귀한 사역 감당하고 계실꺼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목장을 섬기다보면 낙심하고 힘들어 할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너무나 귀한 일이기에 사단은 그 길목들 마다 걸림돌을 늘어놓고 언제나 잠복근무중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This is the way. An only way’

하나님의 축복이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넘치도록 부어지기를 기도하고 또 생각날때 저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